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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주행자동차와 소비자보호
  • 이름 : 박신욱 교수 | 단체 : 경남대학교 법정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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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주행자동차의 등장과 인공지능

최근 자율주행자동차와 관련된 국내·외 소식을 접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예컨대 미국에서 2016년 7월과 11월에 대표적인 자율주행자동차로 여겨지는 테슬라가 운행 중 사고 발생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대학생들이 직접 개발한 자율주행차량으로 운전면허에 도전하는 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과거 상상속의 일로만 여겨지던 자율주행자동차의 등장이 어느새 현실이 되었다. 우리는 인간과 과학의 위대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과학의 발전은 사회의 능동적인 변화를 강제하고 있는데, 법학 역시 예외가 될 수 없음은 자명하다.
현행 자동차관리법 제2조 제1호의3에 규정된 정의에 따르면 “자율주행자동차”란 운전자 또는 승객의 조작 없이 자동차 스스로 운행이 가능한 자동차를 말한다. 이렇게 정의되는 자율주행자동차가 운행되기 위해서는 자율주행기술이 필수적이다. 자율주행기술은 기존의 단순한 주행지원을 위한 기술, 예를 들어 주차지원, 차선 이탈 경고, 차선 유지 지원, 비상 브레이크 작동시스템과는 구분된다.
일반적으로 자율주행기술은 5 혹은 6단계로 구분되는데, 제0단계에서 2단계까지는 운전자지원시스템으로, 운전의 주도권은 운전자가 갖고 있다. 3단계부터는 자율주행시스템으로 이해된다. 다만 3단계에서는 운전자가 개입요구에 적절히 반응할 것이라는 기대를 전제하고 있으나, 이후의 단계에서는 그러한 기대가 전제되지 않는다.
자동차사고의 대부분이 운전자의 과실에 기인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사람이 운전하는 경우보다 자율주행자동차가 스스로 운행하는 경우에 사고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통사고의 위험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도 보편적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자율주행시스템의 핵심에는 인공지능(AI/KI)이 자리 잡고 있다.

자율주행자동차로 인한
사고의 손해배상주체는 누구인가


우리 민법에서 상정하고 있는 권리의 주체는 사람이며, 손해배상의 주체 역시 사람이다. 사람은 법인과 자연인으로 구분된다는 것은 반론의 여지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법인과 자연인이라는 권리의 주체를 중심으로 한 사적자치의 틀 안에서의 법률관계에 집중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는 자기 스스로의 의사에 따라 법률관계를 스스로 형성하는 원칙으로 정의되는 순수한 의미에서의 사적자치라는 개념이 사람만이 “자율성”을 갖는다는 전제를 제공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주체와 객체를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인공지능이 구현된 물건 혹은 현상 역시 자율이라는 특징을 갖는다는 점에서 기존에 우리가 전제하고 있던 “인간본위의 개념적 틀” 안에서 주체와 객체를 구분하는 주종적 이분법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인공지능은 약인공지능과 강인공지능으로 구분되는데, 사후·인위적으로 정보를 추가하는 행위를 배제한 채 스스로 학습하는 능력의 존재유무가 강인공지능과 약인공지능을 나누는 하나의 기준이 된다. 또 하나의 기준은 불확실성 혹은 불확실한 정보를 다루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의 여부이다. 일반적으로 약인공지능은 수학과 공학의 도움을 통해 능동적인 정보처리 능력이 있는 것처럼 보일 뿐, 인간이 지닌 자각을 가지고 있다거나 혹은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지성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이러한 약인공지능은 새로운 사실을 도출할 수 있는 귀납적 추론방식도 가능한 강인공지능과는 달리 연역적 추론방식만이 가능하다. 따라서 합리적 판단을 가능하게 하는 약인공지능은 자율성이라는 표지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는 없으며, 그러하기에 권리주체성을 인정할 여지는 없다.
그러나 강인공지능은 기존에 사람만이 가지고 있던 자율성을 갖추게 된다. 강인공지능에 권리주체성을 인정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향후 뜨거워질 것으로 예상되며,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 그리고 권리주체성이 인정된다는 가정 하에 인공지능의 능력범위에 대한 선결적인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자율주행자동차에서의 운전자 책임

현 시점에서 강인공지능의 단계에 도달하는 것은 요원하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약인공지능을 전제로 소비자피해에 대한 구제방법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우선 고려해야 하는 것은 운전자의 책임이다. 제2단계까지 자율주행자동차에 탑승한 운전자의 주의 의무 수준이 현행법에서 인정되는 자동차 운전자의 주의 의무와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2단계까지는 운전자지원시스템으로 이해되며, 따라서 운행의 주도권이 운전자에게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3단계부터는 운전자의 주의 의무가 감소된다는 주장이 있는데, 이는 의미가 있다. 다만 이를 조금 더 세분할 필요가 있다. 즉, 3단계와 4단계 또는 5단계에서는 다른 논의가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3단계까지는 운전자가 개입요구에 적절히 반응할 것이라는 기대를 전제로 자율주행자동차가 작동하지만, 4단계부터는 그러한 개입 요구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적어도 3단계까지 운전자의 과책에 따른 책임이 적극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4단계에 이르러서 만일 탑승자가 자율주행자동차의 주행에 개입할 수 있는 방식이 없다면 운전자성을 고려할 필요도 없고, 따라서 이러한 경우에는 운전자의 책임을 고려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제조업자가 4단계에 진입한 경우라 하더라도 운전자의 개입을 절대적으로 배제하여 자율주행자동차를 제조할 것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그러하다면 운전자는 운전자가 가지는 특성을 지속적으로 가지게 되고, 이에 따른 주의 의무도 부담해야 한다. 따라서 운전자의 과책을 전제로 했을 때 부담하는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최근 자율주행자동차의 경우 제조업자에게 운전자 책임을 부과하기 위한 이론이 제기되고 있으며, 이러한 견해는 운전자의 과책이 인정되지 않을 수 있고 제조업자의 책임도 면책이 가능하기 때문에 제조업자의 운전자성을 인정하여 발생한 손해의 전보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가능하도록 하기 위한 주장으로 이해된다.

자율주행자동차의 제조업자 책임

이 영역은 자율주행자동차와 관련된 사고 발생으로 인한 책임 영역의 핵심적인 논의 대상일 것이다. 현행 제조물 책임법 제3조 제1항에서는 제조물 책임에 대해 규정하고 있는데, 이에 따르면 제조업자는 제조물의 결함으로 생명, 신체 또는 재산에 손해를 입은 자에게 그 손해를 배상하여야 한다. 제조물의 결함으로는 제조·설계·표시상의 결함이 언급되는데, 자율주행자동차와 관련하여 주요 논의의 대상은 제조·설계상의 결함이다.
제조상의 결함과 관련한 피해가 발생한 경우 소비자는 결함의 존재, 손해의 발생 및 인과관계를 입증해야 한다. 우리나라 대법원은 결함의 존재와 관련하여 입증의 책임을 완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입증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설계상의 결함과 관련하여 우리나라 대법원은 제품의 특성 및 용도, 제조물에 대한 사용자의 기대의 내용, 예상되는 위험의 내용, 위험에 대한 사용자의 인식, 사용자에 의한 위험 회피의 가능성, 대체 설계의 가능성 및 경제적 비용, 채택된 설계와 대체 설계의 상대적 장·단점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사회 통념에 비추어 판단하도록 하고 있다. 대체 설계가 현 시점에서 가능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 비용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설계의 하자도 인정되기 어려울 것이다.
동시에 현행 제조물 책임법은 매우 넓은 면책의 범위를 두고 있어, 피해자인 소비자가 구제를 받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이러한 어려움은 자율주행자동차로 인한 피해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제조물 책임법의 개정 논의

우리나라 제조물 책임법은 다른 나라들과 비교할 때 제조물의 범위를 제한함으로서 제조업자의 책임 범위를 좁히고 있다. 또한 유통의 책임을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제조물 책임을 부담하는 주체의 범위도 좁히고 있다. 더욱이 면책의 범위는 넓으며, 입증은 많은 경우 불가능에 가깝다. 이에 우리의 제조물 책임법은 소비자보호라는 측면에서 볼 때 최소한의 보호에 역점을 두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학계는 지속적으로 지적하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되며, 이러한 비판은 제20대 국회에서 제조물 책임법에 대한 7개의 개정안으로 표출되어 있다. 대부분의 개정안에서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비롯하여, 입증책임의 전환 혹은 완화를 위한 조문을 산입하였다. 뿐만 아니라 일부법안에서는 제조업자의 자료제출의무도 도입하고 있다.
이러한 법률안의 논의과정을 통해 제안된 제도가 우리 제조물 책임법에 적절히 도입된다면 손해배상청구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했던 장벽이 한 단계 낮아지는 결과로 이어질 것은 자명하며, 이로 인해 불측의 손해를 입게 될 피해자 구제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이는 자율주행자동차로 인해 발생하게 될 피해 구제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의 예상을 가능하게 한다. 왜냐하면 현재에도 급발진으로 추정되는 사고에서 입증의 어려움으로 손해의 구제가 요원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자율주행자동차의 경우 더욱 더 고도화된 기술의 흠결을 피해자가 입증하는 것과 인과관계를 증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대부분의 개정안에서 입증 책임의 완화 혹은 전환을 의욕(意慾)하는 것은 향후 예상되는 피해의 구제에 매우 효과적일 수 있으며, 이는 소비자의 보호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변화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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